신인문학상

물의 다비식 외4 / 박 순 규

 

 

 

 

 

물의 다비식 / 박순규

 

 

 

 

불불이 타는 울음조차 비빌 곳 없어   
지층처럼 켜켜이 쌓기만 했다던가
말굽 같은 염부의 손에 이끌렸던가
쨍쨍 내리꽂는 햇볕 아래
출렁, 속절없는 몸뚱이 부려놓았다

자! 불 들어가니 어서 나오시오*
어느 날 누구의 부음이었던가
순리에 길들어 묵묵히 따른다
서두를수록 결정은 부풀려지고 쉬 부서지므로
아리고 쓰린 옹이들 수습하여 염을 한다

가물가물 짭쪼롬한 향 피어오르면
한 굽이 탑돌이를 하듯
염부가 고무래를 들고 염반을 젓는다

꾸들꾸들 자글자글 작열하는 햇살에 
관자놀이 핏줄 툭툭 터져 흩어진다
바닥에 괸 마지막 속울음까지
짯짯이 태우고 나서야 제풀에 까무러치는가
갯바람에 소복소복 하얀 머리칼이 일어선다

바람과 햇살에 피와 살 다 사르고
땡볕 아래서도 그을지 않은
오롯이 희디흰 뼈로만 피워 올린
물의 다비식
투명하게 영롱한 사리를 건져 올리고 있다

 

 

 

* 다비식을 할 때 하는 말

 

 

 

 

 

 

 


피터팬 콤플렉스

 

 

 

 

상상 속에서 온종일 모험으로 유영하는
아늑한 모포가 난 맘에 들어
밑바닥에 가라앉은 네버랜드*를 끌어올릴 거야
요정가루 뿌리고 하늘을 날 때마다
훨훨 탄성과 박수로 심장 두근거리는
제발, 꿈을 꿀 수 있게 날 내버려 둬

집요하게 악어시계가 따라오고 있어, 재깍재깍
기를 쓰고 달아나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아
날개 빠진 어깻죽지 벽에 부딪힐 때마다
무심한 풍경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스멀스멀 어둠이 휘장을 드리우고 있어

꿈이란, 알과 같아 깨고 나와야 한단다
많이 먹을수록 정신이 몽롱해져
누군가 우리를 시험하려는 짓궂은 미끼일 뿐야
가슴이 헛헛할수록 무리 속으로 가야 해
꿈에서 빠져나간 친구들의 빈자리를
혼자 견딜 수 있는 자만이
고독한 파수꾼이 될 수 있단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휘청거릴 때마다
아직은 참새라고 발버둥치지만

 

 

 

넌 벌써 타조만큼 커버렸거든
악어시계를 두려워하지 마
언제부턴가 모두 잡고 싶어 하는 브랜드가 되었어
세상은 해골깃발 펄럭이는 수많은 후크**에 의해
여전히 시끌벅적 둥글둥글 돌아가고 있단다

 

 

 

* 소년들만 사는 가공의 섬
** 해적선 선장

 

 

 

 

 

 

 

 


화장

 

 

 

 

반짝반짝한 생애 마지막 날을 위해 
누군가 붓을 들고 화장을 하고 있어요
고품격 브랜드일수록 들뜨지 않죠
쉽게 지워지지도 않아요
차가운 표정을 바꾸기 위해선
발그스레한 볼터치가 제격이죠
뾰루지나 백반증후가 보이면
향 좋은 수액으로 살짝 닦아내고
늘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일에 재빨라야 해요
하얀 분첩으로 톡톡 코는 오똑 세우고
눈썹은 짙고 또렷하게 
머리결은 반질반질해야죠
치열하게 비비고 덧댄 시간 지나
푸석푸석 한 방울 물기조차 스미지 못할 때
마지막 뜨거운 화장을 하죠
질 좋은 클린징이 필요해요
대개 지나간 시간의 색조는 슬프거든요
뼈와 근육과 힘줄이 모여
와글와글 만들어 낸
무수한 시간들 하얗게 지워지고 있어요
곱게 갈아 뽀송뽀송해진 분가루 날면
바람에 안길 듯 땅에 스며들 듯
훨훨 불타는 의식은 완성되죠
아슴아슴 흔들리는 향은
뽀얗게 화장한 햇살의 분내음일 거예요

 

 

 

 

 

 

 

 

 

 


옷과 날개의 관계

 

 

 

 

한때 옷이 날개이던 시절에는
나무꾼에 의해 무시로 옷들이 사라졌어
훨훨 날고 싶은 선녀들의 궁리 끝에
몸이 날개로 진화하기 시작했대
허물을 벗듯 옷을 던져버리자
웅크렸던 몸들이 꿈틀꿈틀 활개를 쳤지

몸값이 치솟자 선남들도 덩달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공작의 깃털 사슴뿔 등을 기억해 냈대
가시덤불도 적의 눈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몸만들기에 뛰어들었대

차가운 시장의 잣대로 날개를 저울질하자
미용 보디빌딩 다이어트 성형
멋진 근육과 잘록한 허리 흔들며
와글와글 천정부지로 떼 지어 날아갔지

밤이 되면 도시의 대초원은
마법에 싸인 에덴동산으로 변했어
공들인 날개를 검증받기 위해
하나씩 옷을 벗어 던지며 
끄응 끙 푸득푸드득 날갯짓을 했대

간혹 아슬아슬한 비행 소식도 들려오지만
새벽이면 철퍽철퍽 추락하는 소리가 들려

비상하지 못한 이들은 중얼거렸어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 때문에 몸을 가리지 않았다면
신조차 사과를 삼킨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거라고

 

 

 

 

 

 

 

 

벤다이어그램

 

 

 

 

넌 나와 달라 왼손잡이잖아 아니야 난 다만 뾰족한 각을 피해 너의 오른손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었던 거야

머쓱해진 손 흔들며 떠나는 버스에 오른다 자리가 없다 누가 먼저 내릴까 곁눈질하는데 기사님 거칠게 모퉁이를 돈다 와르르, 불안한 종아리에 바짝 힘을 줘보지만 휘청거린다, 어깻죽지 뻐근하게

사람들은 언제나 금 긋는 일에 익숙하다 운전기사, 앉은 사람 그리고 서 있는 사람 한편 빈자리를 노리는 사람 등등 기득의 권리에 주파수를 맞추며 약속이나 한 듯 질끈 눈을 감는다

풍경은 늘 어슷비슷했다 마당 한 귀퉁이를 치열하게 밀고 당기던 어린 시절 땅따먹기놀이를 접은 후에도 학교로 학원으로 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놀이는 계속되었다

해 질 무렵이면 온통 놀이에 정신을 팔다가도 네 땅 내 땅 구분 없이 벽을 허물고 땅땅 평화의 기를 꽂았던가 온종일 실타래 같은 길 위를 헤매다 허기와 갈증으로 만만한 주점에서 하나로 뭉치듯

둥글게 금을 긋는 누군가의 곡선 안에서 아늑한 교집합으로 남고 싶은 것이었다

 

 

 

 

 - 2014년 『시와미학』 신인상 당선작

 

 

 

 

 

 ■ 2014년 『시와미학』 신인상 : 시 부문 심사평

 

 

  계간 『시와미학』 신인상에 투고된 작품은 예년에 비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번 심사에서는 우선 시의 격을 갖춘 작품부터 고른 후 당락을 가리는 방식을 취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하나같이 일정 부분 성취에 이른 완성도 있는 작품들을 투고해 주어 선자로서는 즐거웠다. 우선 1차적으로 선자의 관심을 끈 응모자는 신정순의 「2호선 지하철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산다」 외, 김아인의 「병원에서」 외, 김시린의 「압해상회」 외, 이순선의 「조식」 외, 그리고 박순규의 「물의 다비식」 외 등이었다.
  김아인의 시는 현실에 대한 비감한 의식을 주정적·사변적으로 보여준 점이 약점이었지만, 「꽃밭에서」란 시에서는 진솔한 시적 감수성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비해 김시린의 시는 삶에 대한 진솔함과 진정성이 묻어났으나 상상력의 진폭이 밋밋한 약점을 노출했다면, 이순선의 시의 경우 서정적인 순도는 높았지만 빈약한 사유가 당선작의 함량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일합을 겨룬 작품은 신정순의 「2호선 지하철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산다」 외 9편과 박순규의 「물의 다비식」 외 9편 등의 시편들이었다.
  신정순의 시가 시의 맛과 삶의 피맛을 두루 포괄하는 알레고리의 유연성을 보여준 반면 단순한 도식성과 감상적인 구절들이 눈에 거슬렸다면, 박순규의 경우 전통적인 일인칭 화자로써 후기산업사회의 파편화되고 단자화된 현실을 함축적으로 예각화하는 기량이 돋보였다. 그의 시는 풍부한 상징과 알레고리의 경계에서 구현해 내는 주제에 걸맞는 새로운 사유와 유연한 언어 구사력에 당선의 짐을 얹어주기로 결정했다. 

  계간 『시와미학』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라주리라 믿으며 당선작으로 미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란 삶의 진리나 진실을 개성적으로 형상화해 내는 위대한 창조 행위에 해당한다. 시인이란 예민한 감수성과 직관력으로 다른 사람이 미처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언어를 얻어내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습작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성인들의 경서와 동·서양 고전을 두루 읽는 것도 글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이를 통해 문학의 정서적 환기력을 깨닫고 소재나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런 능력은 대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통해 길러지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 강희안(시인, 본지 주간), 김륭(시인), 오홍진(문학평론가)